[스마트마취통증의학과 칼럼]

만성통증에 일반 진통제가 잘 듣지 않는 이유는, 만성통증이 단순한 통증 신호가 아니라 신경계 자체가 변해 버린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약국에서 사는 소염진통제(NSAIDs)나 타이레놀은 주로 염증이 일어난 말초 부위에 작용하는데요, 만성통증은 이미 뇌와 척수(중추신경계)까지 과민해진 상태라 말초만 겨냥하는 약으로는 통증 조절이 어렵습니다.
핵심 3줄 요약
① 만성통증은 신경계가 과민해져 작은 자극에도 과도한 통증을 느끼는 '중추감작' 상태이므로, 말초 염증만 줄이는 일반 진통제로는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② 만성통증 진통제 치료에는 항우울제·항경련제 등 중추신경에 작용하는 약물이 쓰이며, 약물 외에 신경차단술·운동치료·심리치료를 병행하는 다학제 접근이 중요합니다.
③ 진통제를 점점 늘려도 통증이 줄지 않거나, 통증이 원래 부위를 넘어 퍼지거나, 수면·일상에 큰 지장이 생기면 통증의학과 등 전문 진료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만성통증은 어떤 상태인가요?
만성통증은 3개월 이상 지속되거나, 원래 원인이 해결된 뒤에도 계속되는 통증을 말합니다. 급성 통증과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른데요, 급성 통증은 다치거나 염증이 생겼을 때 우리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입니다. 원인이 나으면 통증도 대개 사라집니다.
그런데 만성통증은 다릅니다. 1996년 미국통증학회와 미국통증의학연합회는 만성통증을 단순한 증상이 아닌 '신경계 질환'으로 정의했습니다. 허리 디스크 수술로 원인을 완전히 제거했는데도 통증이 계속되거나 오히려 심해지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직이 다 나았는데도 통증 신호를 보내는 신경 회로 자체에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만성통증의 대표적 유형으로는 만성 요통, 대상포진 후 신경통, 섬유근육통,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편두통, 삼차신경통 등이 있습니다.
왜 일반 진통제로는 안 잡히나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중추감작(central sensitization)'이라는 현상 때문입니다. 중추감작이란, 뇌와 척수의 신경세포가 과민해져서 평소라면 아프지 않을 자극에도 통증을 느끼고, 약한 통증도 크게 증폭해서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과정을 좀 더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1단계 — 정상적인 통증 전달: 손을 베이면 손끝의 말초신경이 통증 신호를 척수로 보내고, 척수가 이를 뇌로 전달해 "아프다"고 느낍니다.
2단계 — 말초 과민화: 염증이 생기면 손상 부위 주변의 신경이 예민해집니다. 이때 소염진통제(NSAIDs)가 염증 물질(프로스타글란딘)을 줄여 주면 통증이 완화됩니다. 급성 통증에 타이레놀이나 이부프로펜이 잘 듣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3단계 — 중추감작(만성화): 통증 신호가 오래 반복되면, 척수와 뇌의 신경세포 자체가 구조적·화학적으로 변합니다. NMDA 수용체라는 신경 수용체가 활성화되면서 통증 회로가 '증폭 모드'로 고정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말초에 염증이 없어도 통증이 지속되고, 가벼운 접촉만으로도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이상통증, allodynia).
일반 소염진통제는 주로 말초의 염증 반응을 줄이는 데 특화되어 있어, 이미 중추신경까지 변해 버린 만성통증에는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비유하자면, 화재 경보기(신경계) 자체가 고장 나서 울리는데 불(염증)만 끄려고 하는 셈인데요, 경보기를 조정하지 않으면 경보가 멈추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급성 통증과 만성통증은 이처럼 통증이 만들어지는 경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진통제를 써도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만성통증 진통제에는 어떤 약물이 쓰이나요?
만성통증에는 일반 소염진통제 대신, 뇌와 척수의 통증 전달 경로에 작용하는 약물이 주로 쓰입니다. 항우울제와 항경련제가 대표적인데요, 이름만 보면 우울증이나 간질 치료제 같지만, 통증 신경의 과민한 활동을 억제하는 별도의 작용이 있어 만성통증 치료에 사용됩니다.
만성통증에 쓰이는 주요 약물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삼환계 항우울제(TCA): 아미트리프틸린 등이 대표적입니다. 뇌간에서 내려오는 통증 억제 경로를 활성화해 통증 신호를 줄여 줍니다. 만성통증의 1차 약물로 많이 처방됩니다.
②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SNRI): 둘록세틴이 대표적입니다.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해 하행 통증 억제 경로를 강화합니다. 섬유근육통, 신경병증 통증 등에 건강보험 적용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③ 항경련제(칼슘 채널 리간드): 가바펜틴, 프레가발린(리리카) 등이 있습니다. 과흥분 상태인 신경세포의 활동을 안정시켜 신경병증 통증에 효과가 있습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 등에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됩니다.
④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 트라마돌, 펜타닐 패치 등이 있습니다. 중추신경의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직접 작용해 강력한 진통 효과를 내지만, 내성과 의존성 위험이 있어 다른 치료로 조절이 안 될 때 제한적으로 사용합니다. 내성이란 같은 용량에서 효과가 줄어 점점 더 많은 양이 필요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러한 약물은 통증의 유형·강도·동반 증상에 따라 단독 또는 병합으로 사용하며, 반드시 전문의 처방 아래 용량을 조절해야 합니다.
약 말고 다른 치료법은 무엇이 있나요?
만성통증은 약물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여러 방법을 함께 쓰는 '다학제 접근'이 표준 치료 방향입니다. 약물치료, 시술, 운동치료, 심리치료를 통증의 양상에 맞춰 조합하는 것입니다.
신경차단술(신경블록): 통증을 일으키는 신경 주위에 약물을 주입해 통증 신호 전달을 차단하는 시술입니다.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며, 대표적으로 후지내측지 신경차단술은 만성 요통에 많이 시행됩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이 시술 건수는 2010년 약 10만 건에서 2023년 180만 건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척수신경자극술(SCS): 척수 근처에 전극을 삽입해 약한 전기 자극으로 통증 신호를 차단하는 방법입니다. 약물이나 시술로 조절이 안 되는 난치성 만성통증에 고려하며, 진통제 사용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운동치료·물리치료: 적절한 신체 활동은 통증 억제 경로를 활성화하고, 근력과 유연성을 회복시켜 통증 악화를 막아 줍니다. 통증 때문에 움직이지 않으면 오히려 신경이 더 예민해질 수 있어, 전문가 지도 아래 단계적으로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리·인지행동치료: 스트레스, 불안, 우울은 만성통증을 악화시키는 대표적 요인입니다. 통증에 대한 인식과 대응 방식을 바꾸는 인지행동치료가 통증 강도와 기능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통증 교육(pain neuroscience education)을 통해 환자가 자신의 통증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 자체도 통증 인지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진통제를 오래 먹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요?
소염진통제(NSAIDs)를 장기간 복용하면 위장 장애, 신장 기능 저하, 심혈관 질환 위험 증가 등 부작용이 누적될 수 있습니다. 만성통증 환자가 효과가 적은 소염진통제를 계속 늘려 먹는 것이 위험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소염진통제의 주요 장기 부작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의 경우 소염 작용은 없지만, 고용량 복용 시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간 기능이 좋지 않은 경우 주의가 필요합니다.
내 통증, 어떻게 판단하면 되나요?
만성통증은 상태에 따라 대응이 달라집니다. 아래 기준으로 본인의 상태를 확인해 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 경과를 지켜봐도 되는 경우
통증이 간헐적이고, 일상생활(수면·출근·가사)에 큰 지장이 없는 경우
일반 진통제를 가끔 복용하면 어느 정도 조절되는 경우
통증 부위가 한정적이고, 범위가 넓어지지 않는 경우
스트레칭이나 가벼운 운동 후 통증이 줄어드는 경우
이런 경우에도 3개월 이상 통증이 지속된다면 한 번은 진료를 받아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 진료를 권하는 경우
통증이 3개월 이상 지속되며 점점 강도가 세지는 경우
진통제를 점점 자주, 많이 쓰게 되는데도 효과가 줄어드는 경우
통증 부위가 원래 위치를 넘어 주변으로 퍼지는 경우
가벼운 접촉이나 온도 변화에도 통증이 유발되는 경우(이상통증)
수면 장애, 우울감, 집중력 저하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
저림, 감각 이상, 화끈거림 등 신경 증상이 동반되는 경우
🚨 빠른 진료가 필요한 경우
통증과 함께 갑작스러운 근력 저하(힘이 빠짐)가 나타나는 경우
대소변 조절이 어려워지는 경우(마미증후군 의심)
통증과 함께 원인 불명의 발열이나 체중 감소가 동반되는 경우
야간에 잠을 깰 정도의 심한 통증이 새로 나타난 경우
외상 후 통증이 급격히 심해지면서 해당 부위가 붓고 색이 변하는 경우(CRPS 의심)
이런 증상은 심각한 원인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지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